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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고 수능 비문학 칸트(2015년 출제) 지문을 풀려본 결과는?

by 가다머 2023. 3. 10.

중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고 수능 비문학 칸트(2015년 출제) 지문을 풀려본 결과를 통해서 철학이 결코 고등학생 이상만 배워야 할 공부가 아니며, 중학생들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이, 수능을 풀어본 결과를 통해 드러났다.

 

중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쳐 본 느낌

나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특별히 정말 좋은 스승을 만나서 동서양의 철학을 제대로 배웠다고 자부한다. 본래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던 나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학창 시절에는 철학에 푹 빠져 살았었다. 그래서 직업도 그동안 국어논술학원을 운영해 왔다. 나에게 학원 운영은 늘 책과 더불어 살 수 있었던 터전이었고, 민생까지 해결됐으니 일석이조, 신의 한 수였다. 내가 주로 지도했던 대상은 고등학생이거나  재수생이었다. 그리고 방학 시즌을 이용해서 학원에서 철학특강을 개설했다. 특강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것은 철학이 대입논술 지문이나 수능국어 비문학 지문으로 비일비재하게 출제됐기 때문이었다.  공급이 있었으니 수요도 있었던 것이다. 철학을 수강하는 학생들 중에는 민사고나 특목고는 물론 일반고 아이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역시 민사고는 민사고라는 생각이 든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노력과 성실성 면에서도 타의추종을 불허했다. 타학교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그런데 내가 요 근래에 철학을 중학생들(7명)에게 가르칠 기회가 있었다. 고대철학부터 현대철학까지 주로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설파했다.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저 철학자들 이름이나 소개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했다. 그러나 반응이 의외였다. 아이들은 진지했고, 난해한 철학의 내용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수능 비문학 칸트 지문(2015년 수능 출제)

칸트 철학은 나의 대학 졸업 논문이기도 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내가 대학다닐 때는 논문도 쓰고, 졸업시험도 봤다. 나는 당시 석학이셨던 이정복 교수에게 철학을 배웠다. 많은 스승들이 계셨지만, 그중에서도 내게 이정복 교수님은 조금 특별하셨다. 그래서 대학원 때도 이미 은퇴를 하셨지만, 지도 교수로 위촉을 해서 논문 심사까지 받을 정도로 존경했던 분이셨다. 당시 그분의 연구실이 은퇴 이후에 장충동에 있는 대학문화원이어서 그곳까지 대학원 친우랑 늘 갔던 기억이 난다. 수업 시간이 조금 여유가 있을 때는 바로 옆에 있는 엠배서더 호텔 커피숍에서 릴랙스를 했던 추억도 새록새록하다.  스승님은 나의 대학 졸업 논문(칸트의 자유론)을 보시고 칭찬해 주셨다. 외모는 전형적인 학자 타입으로 엄숙하신 편이신데, 나한테 만큼은 그나마 살갑게 대해주셨던 좋은 기억만 있다. 이런 칸트 철학이 2015년 수능 국어 비문학에 출제됐다. 나에게 철학을 배운 학생들은 4문제를 모두 맞추지 못한 것이 기적이었다. 거의 맞았다. 칸트는 명불허전의 3대 주저가 있다.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이 그것이다. 본 지문은 판단력비판과 관련된 부분이다. 칸트의 문제는 그가 감각의 세계와 물 자체(Ding an sigh)의 세계를 이원론적으로 분리해 놨다는 것이었다. 칸트에게 물 자체의 세계는 불가지였다. 하지만 그것은 알 수도 있었다. 바로 취미판단을 통해서였다. 이러한 칸트 철학의 메커니즘만 알면 수능 4문제는 보너스인 것이다.

중학생들이 칸트 지문을 푼 결과 

나는 지인의 부탁으로 몇개월 전부터 중2아이들을 그룹으로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이 아이들에게 철학을 가르쳐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누가 원해서 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겨울 방학을 이용해서 철학을 가르쳤다. 고대철학부터 차근차근 최대한 쉽게 가르쳤다. 내가 처음 철학을 배울 때,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분이 계신다. 그분은 꽤나 독특한 지론을 갖고 계셨다. 그것은 어떤 난해한 철학도 쉽게 그림으로 설명하지 못하면 진정으로 그것을 안다고 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분의 수업은 칠판이 온통 그림으로 뒤덮였다. 그런데 그림을 잘 그리는 편도 아니어서, 학생들은 키득키득 웃기 바빴다. 하지만 그분의 수업방식이 왠지 맞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는 중학생들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칸트의 '코페니쿠스적 전회'를 그림을 통해 설명했다. 내가 봐도 그림은 우스꽝스러웠다. 나는 그림에는 소질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신기하게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표정이었다. 거기에 더 나아가 칸트의 판단력비판까지 설명했다. 그리고 위에 있는 칸트 지문을 주고 풀도록 했다. 그리고 채점을 했다. 그 결과 7명 중 1명은 4문제를 모두 맞췄고, 3명은 3문제, 나머지 3명은 2개를 맞췄다. 내가 생각하는 기대 이상이었다. 나는 그동안 중학생을 너무 어리게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고의 지평까지 어리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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